미래문화자산

삶의 질 바꾼 1927년 마을 수도 시설의 기억

서호 수도기념비

2022-4호 서귀포시 서호로 27(서호동 811-1) 생활문화

일제 강점기 시절, 서호리 주민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통물’에서 물허벅으로 물을 길어와서 식수로 사용했다. 통물은 바위틈이나 땅속에서 물이 솟아 흘러 물통이 형성되거나 인위적으로 주위를 통처럼 단장한 샘물을 말한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주민들은 수도 시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926년 겨울에 당시 구(이)장을 중심으로 수도 시설을 설치하기로 뜻을 모았고, 오사카에 살던 서호리 출신 재일동포들까지 합심했다. 수도기성회를 조직해 마을 출신 재일동포 5,000원, 마을주민 4,670원 등 9,690원을 모금하고 수원지 조사에 나섰다. 처음엔 옆 마을인 호근리와 공동으로 수도 시설을 만들기로 했으나, 급수량이 적을 것 같다며 호근리에서 포기하자 서호리가 단독으로 진행하게 됐다.

‘각시바위 절곡지물’을 수원으로 1927년 1월 24일 착공해 총 3,454m 수도관을 서호리 마을까지 연결했다. 마을을 4개 구역으로 나눠 수도를 설치했고, 7월 7일 본격적으로 물을 공급했다. 1934년엔 수도 시설 2곳을 추가로 만들었고, 이듬해엔 학교 운동장과 숙직실까지 도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수도를 확장했다.

당시 주민들의 물 사용료, 즉 수도료는 무료였다. 수도 시설은 주민들의 삶의 여유와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민간 주도형 수도 시설 설치와 마을 공동체의 의미를 높이 기리기 위해 1935년 마을 안길에 기념비(높이 68cm, 너비 34cm, 폭 15.5cm)를 세웠다.

1938년 일본중앙공업시험소가 발간한 『제주도 수원조사 개보』에 따르면, 서호리 출신 6,000평, 호근리 출신 4,000평을 기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서호리 주민들의 노력으로 수도를 설치하여 원거리 식수 운반에 필요했던 노동력을 절감했고, 수인성 전염병을 예방해 건강 증진과 가계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제안자 오시창(서호동)

제안 사유 일찍이 마을 수돗물 공급으로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 수도기념비 건립을 모범 사례로 마을공동체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