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문화자산

1933년 고래잡이 선원들 넋을 달래다

포경선 조난 추도비

2022-3호 서귀포시 서홍동 708-1 남쪽 생활문화

조난추도비(遭難追悼碑)는 처음에 동양포경주식회사 서귀포 고래잡이 전진기지 내 공장에 설치했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지역주민들이 깨어 넘어뜨렸고 이후에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이 비는 자연석으로 높이가 약 160cm이다. 앞면에는 큰 글자로 조난추도비를 새겼다. 좌측에는 배의 이름, 우측에는 회사 명칭과 세운 시기를 담았다. 비석 후면에는 조난자의 이름이 새겨 있다.(遭難追悼之碑 捕鯨汽船いなつま丸 東洋捕鯨株式會社 昭和八年十一月五日)

1933년 11월 4일 서귀포항을 출항한 포경선 도처환(稻妻丸 이나즈마마루)이 조난 당하였으나, 그 흔적을 찾지 못했다. 당시 포경선에는 선장을 포함 13명이 승선했고 이 가운데 한국인은 김장욱, 김원종, 김우근, 유도맹 등 4명이었다. 이 추도비는 당시 승선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일본은 1924년 11월~1925년 5월 서귀포항 서방파제가 준공되자, 이곳에 고래공장과 연탄 하치장을 먼저 세웠다. 당시 고래공장에는 포획한 고래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 후 1909년 동양포경주식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한국 근 해에서 포경 작업을 전개했다. 1917년 서울에 지점을 설치한 후, 전국에 서귀포를 비롯한 6개 사업소를 두었는데, 서귀포 고래기지는 1929년 5월 10일에서 1942년까지 가동되었다. 당시 시설 규모는 서귀리 지선에 잔교 목조 72평, 잔교(축) 71평, 전용면적 143평 3합, 포경선 근거지 1903평과 122평 등이었다. 일본이 당시 포획한 고래는 크기 15~18m, 무게 60~80톤에 이르는 거대한 참고래였다. 1911년부터 1944년까지 제주 연안에서 337마리가 포획되었다.

제안자 장태욱

제안 사유 지금은 멸종했지만 한 때 제주도 주변에 고래 서식이 많아 제주도민이 고래잡이 동원됐음을 알리는 소중한 자산이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