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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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만들어 “오손도손, 조손!”

꽃보라스튜디오의 라탄공에 달빛라운지

현장취재
축제형 마을라운지 활동일지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마을 전체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주간이 있었다. 2023년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한 주간 지역주민은 물론 축제의 시기에 마을에 방문한 관광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열렸다.
특히 저녁 시간대 누리지 못하는 문화적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달빛라운지’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센터와 문화협약을 맺은 18개의 마을라운지 공간지기가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 서귀권 마을라운지인 꽃보라스튜디오에서 열렸다.
행사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꽃보라스튜디오 김보람 대표를 만났다.



SNS와 친하지 않은 세대를 생각해 만든 기획
동홍동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보람 대표의 ‘꽃보라스튜디오’는 그야말로 김대표 취미생활의 집합체이다.
회사 다니면서 취미활동으로 공예를 시작한 지 16년이 되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해 액세서리 공예를 맨 처음 배웠다가,
세서리에 리본을 넣어보고 싶어 리본 공예를 배우고, 리본을 하다 보니 원단을 알고 싶어 미싱을 배우고, 미싱으로 가방을 만들다 보니
가방 밑바닥에 라탄이 들어간 것이 예뻐서 라탄공예를 배우게 되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그 집중력에서 나오는 건강한 에너지가 너무 좋았고, 그 에너지가 지친 마음을 얼마나 달래주는지를 잘 알았기에,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달해주고 싶어 막내아이가 두 살일 때 꽃보라스튜디오 문을 열게 되었다. 같이 육아를 하는 엄마들, 동네주민들이 알음알음 이곳을 찾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로 유치원과 센터에 출강까지 하게 되었다.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선한 곳에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불러주는 데가 있다면 재능기부로 마을회관의 어르신들도 찾아갔다.



“한남리 마을회관 삼춘들에게 라탄공예를 가르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뭘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마치 인도네시아 원주민처럼 자세를 잡고 라탄줄기를 제대로 꼬시는 거예요. 어쩜 이렇게 잘하냐 물으니, 옛날에 구덕을 만드셨대요.
그 기억이 되살아나서 아주 신나게 만드시더라고요. 추억과 함께 그 시간을 즐기시는 걸 보니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런 문화프로그램이 있는 줄 정말 몰라서 못 누리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달빛라운지에 지원했을 때부터 이미 SNS 및 인터넷에 취약한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이름도 멋진 ‘오손도손, 조손!’이다. 어르신들은 ‘자기를 위한 문화’라고 하면 참석하지 않을 것까지 예상하고,
그렇다면 가장 사랑해마지 않는 ‘손주’를 위해서는 뭘 하시겠지 싶어 손주를 끼워넣은 것이다. 손주들은 바구니를 만들고,
할머니를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채반 만들기를 준비했다.



“홍보가 되자마자 문의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저 멀리 판포리에 계신 분들까지 연락이 오셨어요. 요즘 맞벌이가 많잖아요?
할머니들이 손주를 키우는 경우들이 많은데, 우리 프로그램을 보시고, 친정엄마, 또는 시어머니에게 재미난 프로그램을 듣게 해주고 싶으신 거죠.
지금 할머니가 육지에 계신데, 엄마가 대신 참석해도 되냐는 전화도 받고요. 아무튼 달빛라운지 프로그램 신청자 모집하자마자 마감되었죠.”



몰라서 참석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손주가 잘 못하면 할머니가 도우며, 할머니가 잘 못하면 손주가 힘이 되어주면서 모두가 즐겁게 라탄바구니와 채반을 만들어갔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또 하고싶다며,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할머니도 계셨단다.
그럴 때 김보람 대표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유튜브를, 게임을, 핸드폰을, 텔레비전을 떠올리지 않았다.



“도시에서 살다가 아이가 곤충을 너무나 좋아해서 제주에 오게 되었거든요. 어디서나 벌레를 만나고 즐길 수 있으니까.
큰애가 벌써 열 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그 취미생활을 잘 누리고 있어요. 돌아보면 주위에 핸드폰을 멀리하고도 즐길 수 있는 취미, 문화활동이 많아요.
아이도 어른들도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몰라서 참석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어르신들에게 알려줄 루트가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달밤에 손주와 함께 바구니를 짜던, 그 시간을 할머니는 잊을 수 있을까? 어린 손주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마음에 저장되겠지,
라탄을 만지며 그 옛날 구덕을 짜던 시간을 떠올린 것처럼. 손주에게도 어르신에게도 그런 건강한 추억 하나가 생겼다고 하니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