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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색’을 널리 전하고 싶어요

박지혜_ 이음새 공방 대표

인터뷰
사람과 공간을 만나다



갈천공예 명인이자 제주전통감물염색보존회 대표.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미술대학에서 도자기, 디자인 등 다양한 공부를 하다 ’염색‘에 매료되어 섬유디자인에 정착했다.
염색도 다양한 길이 있는바, 역시나 호기심이 생기는 대로 길을 걷다 보니, 태초의 색이자 자연에서 얻는 염색을 하게 되었다.
특히 감물염색이야말로 옛 조상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하던 ’노지문화‘ 그 자체임을 깨닫고, 감물염색의 가치를 알리고자 전시, 수업,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Q. 염색의 종류도 다양한데, ’천연염색‘에 매료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셨는지도요.
제가 1990년도에 대학을 다녔는데, 제주대학교 미술대학은 다양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도자도 하고, 금속도 배우고, 디자인도 할 수 있었죠.
그렇게 다양한 공부를 한 뒤에 전공을 정할 수 있었어요. 다 재미있었는데, 특히 섬유 쪽이 재미있더라고요.
도자 같은 경우는 가마도 있어야 하고, 화학적 반응에 의해 결과물이 전혀 예상과 다를 때가 많은데,
섬유는 내가 스케치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간편하고, 또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섬유디자인으로 길을 정하고, 화학 염색도 하고, 씨줄과 날줄을 엮어 짓는 타피스트리 공예도 하고, 위빙공방도 열고...
섬유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공부하고 배우고 또 뭔가를 만들어낼수록 어떤 근원적인 일들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쪽이나 감 같은 자연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천연염색에 눈을 뜨게 되었죠. 언제부터라고 한다면, 사실 대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일이라 할 수 있겠네요.



Q. 근원적인 일이라는 것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요. 감물로 이렇게 다양한 색이 나오고 옷감을 물들일 수 있다는 자체가 저로선 참 신기하거든요.
그렇죠? 감물염색은 정말 감과 물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염색이에요. 우리가 요즘 탄소중립이라는 말을 자주 쓰잖아요?
감물로 옷을 물들이면 탄소가 1도 발생하지 않는답니다. 그야말로 친환경적이기에 지금 오히려 더더욱 필요한 염색이 아닐까싶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도에서는 감물염색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는데, 어떤 특정한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
각 가정의 어머니들이 8월이 되면 풋감을 따놓아 준비해놓았다가, 따놓은 감으로 옷을 물들여서 입고 생활했던 거예요. 제주의 해녀문화처럼요.
해녀도 특정된 명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주 여자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해온 일이잖아요. 감물염색도 일상의 노지문화였어요.
그래서 저는 갈옷을 만들기도 하지만, 주변 어르신들을 초청해 수업도 진행하고, 계속 이 좋은 문화가 이어지도록 교육하는 것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Q. 산방산 돌비석이나 옛날 비옷인 우장 같은 문화들은 사실상 사라져 돌이킬 수 없지만 ’갈옷‘은 그렇지 않네요?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문화네요?
그렇죠. 화학적 염색을 한 면직물은 땀이 나면 옷이 피부에 붙잖아요. 너무 신기한게 삼베나 마 같은 옷에 감물을 들여놓으면 여름에도 땀으로 옷이 들러붙지 않아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대요. 물들이기도 쉬워요. 감만 있으면 되니까. 감 외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감을 따서 그냥 덩드렁막개로 으깨고 도구리 같은 데 넣어가지고 주무르는 거죠. 아니면 강판에 감을 갈아서 즙을 낸 다음에 거기서 적셔서 입어도 되고요.
그리고 그것을 다음해 다다음해에 또 염색해도 되어요. 재탕 삼탕이요. 그만큼 오래 입을 수 있다는 거죠. 항균성도 높고요.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갈옷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이 점점 짙어진답니다. 그래서 질리지가 않아요. 색깔이 변하니까요.
삼춘들은 색깔이 어두워지면 싫어하시기도 하지만, 우리 눈에는 작가님이 감탄한 것처럼 다양하고 아름답죠.



Q, 감물로는 옷만 만들었나요?
아니요. 뭐든 염색할 수 있었어요. 겉옷 속에 받쳐 입었던 굴중이를 염색하기도 하고, 구덕이나 바구니에도 감물을 들였죠. 항균성이 있고 보기에도 좋고, 오래 보존할 수 있으니 어디든 사용했어요.

Q, 그래서 제주에 귤 다음으로 감이 많았군요!(웃음) 문화도시센터와 협업한 ‘일상형 마을라운지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던 수업의 이름이 ‘태초의 색’이었어요.
정말 멋진 이름인 것 같아요.
제주신화 속에 나오는 구절을 가지고 착안한 수업이에요. 처음 탐라국이 생겼을 때 외국에서 온 세 명의 공주와 제주 부씨, 고씨, 양씨를 지닌 신인과 결혼했다는 설화가 있거든요.
그때 세 공주가 ‘푸른옷’을 입고 왔다고 전해져요. 그 푸른옷을 ‘쪽’과 연결시켜본 거죠. 쪽염색에 대해 공부하며 직접 염색도 해보고 있어요.
총 10회차인데, 오조리 마을 부녀회랑 수업하거든요? 정말 단 한 분도 빠지지 않고 재미있게 수업하고 있어요.
이렇게 된 데에는 마을지원사업, 문화도시센터의 지원이 크죠. 전까지는 제가 제주에 살고 있어도 어르신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문화도시 네트워킹도 하면서, 교류의 힘을 알게 된 거예요. 노지문화탐험대도 했었는데, 그때 이곳 마을 삼춘들을 수소문해서 정말 옛날 제주방식 그대로 옷을 연구하고 만들기도 했어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또 저희 시어머니가 굴중이 만드는 방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셔서 휴먼라이브러리 영상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셨죠.



Q, 센터에서 아주 모범생으로 생각하실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웃음) 뭐 딱히 없는데 너무 빡세게 일하지 말고 즐기면서 살자? 이음새 공방도 이 곳 부녀회 사랑방, 작은 도서관의 개념이 되면 좋겠어요.
제가 해보니까 이런 네트워킹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사라진 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계기도 되고요.
우리가 그런 씨앗을 전파하는 전파자의 역할을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씨앗을 뿌렸지만 물을 주지 않으면 자라지 않죠.
그럼 또 어느 누구는 물을 주는 역할을 하면 되고.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역량을 키워나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