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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리 마을투어 일기

즐기고, 나누고, 다시 만나자

제주는 계절마다 색깔, 분위기, 풍기는 냄새마저 다르지만, 겨울은 특히 그렇다.
도시의 겨울은 차갑고 무채색인데 비해 제주의 겨울은 어쩐지 알록달록하다.
노란 귤이 초록색나무에 정갈하게 붙어 있으니, 자연이 만들어준 크리스마스트리가 따로 없고,
여전히 초록초록한 밭에는 브로콜리며, 배추며, 싱싱한 채소들이 계속 자란다. 그리고 동백, 겨울을 알리는 꽃.
온통 얼어붙어 움츠러들기만 하는 계절에,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붉은 꽃. 



신흥리는 동백으로 유명해진 마을이지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 조용한 마을에는 사실 문화를 깨알같이 누릴 수 있는 곳들이 생각보다 많다.
귤밭 속 책방부터, 돌창고 안 사진관, 그림과 캘리그라피 원데이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공방, 몸을 이완시켜주는 요가원까지. 동백이 주는 위로와 함께,
마을투어를 해보고 싶어져서 제주도 지도를 대각선으로 접어야 만날 수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해 신흥리에 도착했다. 





날씨가 크게 도와주지 않은 탓에 비와 우박과 바람 3단콤보를 물리치며,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키라네책부엌>이라는 예약제 책방이었다.
귤밭안 구옥을 들어서면, 보물창고가 나타난다. 일본 가정집에서 소중하게 쓰이고 있을 것 같은 다기 종류와 음식 관련한 책들,
이곳 주인이 소장한 책들의 서가에 아늑한 소파, 필사를 할 수 있는 곳. 손님이 오시면 늘 따듯한 것들을 준비해놓을 것 같은 주방…
어느 누군가가 정성껏 꾸며놓은 이웃집 같기도 하고, 동네 책방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소중한 공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행복했다.







책방 주인과 잔뜩 수다를 떨고 다음으로 간 곳은 <스튜디오매력>. 오래된 돌창고를 개조해놓은 사진관이다.
전날 미리 사진관 예약을 해두었는데, 당일에 20년지기 친구와 동행했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할 겸, 2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우리의 우정도 기념하고 싶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는 사진작가님과 함께 신나게 떠들며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인화를 해 종이액자에 끼워주기 때문에
기다리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 혹시나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면 바로 옆에 <달무지개>라는 조그만 상점에서 구경도 하고 예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어서,
신흥리 마을에 있는 것 자체로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4년 전, 아장아장 걷던 아이와 함께 보았던 동백꽃은 비록 날씨로 인해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하고 건강한 이야기를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저곳에 무심한 듯 놓여있는 공간.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며 함께 제주에 살고 있는 이들의 고민과 애정과 앞으로의 계획들을 들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작은 재능과 일들로 지속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늘 고민하지만 결국은 그 안에 제주에 대한 갖은 애정이 담겨 있다. 끝끝내 ‘가장 제주스러운 것들’ ‘가장 가치있는 것들’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은 버틸 수 있음을 기대하면서. 선한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계속 기억되기를, 겨울이 되면 이 추억들이 신흥리의 흐드러지는 동백꽃처럼 생각나기를, 다시 만나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