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라운지

프로그램썸네일

서귀동 카페, 라바르와 카발루스

아버지의 흔적을 품고 새로 태어난 공간



서귀동엔 작가의 산책길이 있다. 산책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마치 거대한 정원에 발 딛고 있는 듯하다.
바다를 끼고 걷다가 때가 되면 자연이 만들어낸 폭포가 나오고, 미술관이 등장하며, 제법 운동이 되는 언덕을 오를 수 있고,
오직 수평선만 펼쳐지는 곳에서 작은 배의 돛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섬이 머리를 내미는 것을 만끽할 수 있다.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진 내가 거인의 정원을 몰래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제주라는 섬이 처음 생기고, 마을들이 늘어나면서 서귀포에서 가장 먼저 번화한 곳,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았던 곳, 그래서 올레길마다 전봇대와 돌담, 야트막한 구옥 지붕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곳. 골목마다 재미난 이야기들이 가득한 곳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오늘은 오랜 이야기를 품고 새롭게 태어난 두 가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 카페 라바르  
이미 많은 이들이 알겠지만, 서귀동을 떠올리면 이 공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50년 전에 지어진 목욕탕. 폐업을 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원형 여탕과 굴뚝 등을 그대로 남겨둔 채 완전히 다른 카페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온천탕이 없어지기 전, 이곳에서 여러 예술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했을 때 와보고, 다시 왔을 땐 완전히 바뀐 모습이라 깜짝 놀랐다.



기억하고 싶은 과거를 현재의 아름다운 공간에서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대표님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온천탕의 과거를 조금 더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기억하고 싶었던 과거는,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4대가 함께 살았던 공간엔 그의 아버지가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한 공간이 많았다.
또한 한편의 공간에서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열려 있었다. 




아버지의 집은 모두의 작업실, 카발루스  
역시나 오래전에 지어졌으나 아주 튼튼한 벽돌 양옥집, 카발루스에도 들렀다.
이곳 역시 카발루스를 운영하는 대표님의 아버지가 살던 집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까, 고민하다가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조했다.



천연가죽 공방으로 운영되면서 '모두의 작업실'이라는 이름하에 작업공간이 따로 없는 예술가 및 프리랜서들에게 저렴한 대여료로 공간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죽은 습기에 굉장히 예민한 도구인데, 습한 제주에서 다룰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직접 설계를 했던 집인데, 희한하게도 이 집은 습한 기운이 전혀 없어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집이죠” 하셨다. 마침 카발루스에 들렀던 때가 생일이라, 나에게 주는 선물로 가죽팔찌를 만드는 체험도 하고, 가느다란 은반지도 하나 구입했다.   



자식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어떤 것일까.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곳을 쉽게 무너뜨리지 못하는 마음. 끝내 이어가고 싶은 마음. 완전히 다르지만 묘하게 비슷한 두 곳을 다녀오며,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