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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답사] 서귀포의 하논분화구 답사보고서

2021-08-05 조회수 129374

[현장 스토리]
○ 하논분화구 이야기
한라산 백록담보다 큰 분화구이자 조선시대부터 벼농사를 짓고 있는 하논분화구는 제주의 자연사와 제주인의 생활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장소이다. 아울러 지리적 생성과정과 역사는 물론 제주인의 삶과 지혜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하논}은 [큰 논]이라는 의미를 지시한다. 제주에서는 하논이 논 중에서 가장 큰 논임을 뜻한다. 옛말에서 {하다}는 {많다, 크다, 높다}의 의미로 쓰인 형용사이다. 따라서 명사 앞에 쓰일 때는 {한강}과 같이 관형형 어미를 활용하여 [큰 강]을 지시한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하}와 {논}을 그대로 결합하여 {하논}으로 쓰면서 {큰 논}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하논분화구 방문자센터에 비치된 자료에 따르면 “학계 전문가들은 하논분화구 생성 초기에는 물이 차 있어 거대한 마르 호수를 이뤘을 거라고 추정한다” 고 하였다. 현재도 용천수가 샘솟고 있어서 쌀농사를 짓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2년 전에 추수하는 사진을 찍었을 때보다는 경작 면적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 같다. 트랙터로 벼를 추수하는 장면은 제주에서 쉽게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하논분화구 안에는 나지막한 오름도 하나 있고,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구부러진 돌담길도 있다. 이끼 가득한 돌담 너머로 제주인의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귤나무도 쉽게 볼 수 있다.

○ 하논분화구의 역사와 장소적 가치
하논분화구 안에서 우리는 하논 성당터와 봉림사도 볼 수 있다.
■ 하논성당터: 1900년 6월 김원영 신부에 의해 설립되어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였으나 신축민란 (이재수의 난)을 일으키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여 교세가 쇠락하여 현재 서귀포성당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 봉림사: 1929년 최혜봉 스님에 의해 설립한 용주사가 4·3때 무장대와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건물 일체가 전소되어 혜공 스님이 개건하면서 황림사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일경스님에 의해 봉림사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취재 스토리]
○ 하논분화구에 대한 참고자료
■ “하논 분화구는 약 5만 년 전 화산이 빚어낸 자연의 걸작품이자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제주도민들의 삶터인 곳이다. 하논 분화구는 용암 분출로 생성된 일반 화산 분화구와는 다르게 마르(maar)형 분화구로 화산활동 초기 단시간의 폭발적 분출 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작은 언덕이 화구를 둘러싼 화산을 말하며, 분화구에서 용천수가 솟아 제주에서는 드물게 논농사를 짓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올레길 7-1코스로 조성되어 만나볼 수 있는데, 하논의 너른 분화구에 펼쳐진 논과 감귤밭은 낯설면서도 이색적이다.
■ 하논 분화구는 제주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논 지대로 옛 문헌에 따르면 약 500여 년 전부터 벼농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맑은 날에는 분화구 너머로 또렷하게 보이는 한라산과 더불어 서귀포 앞바다와 섶섬까지 아스라이 조망할 수 있다. 사계절 다채로운 풍경과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하논 분화구를 기억해두도록 하자.”
■ “하논분화구는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대표적인 마르형 분화구이다. 용암 분출로 생성된 일반적인 화산 분화구와 딜리 마르형 분화구는 용암이나 화산재 분출 없이 깊은 지하의 가스 또는 증기가 지각의 틈을 따라 모여 폭발하여 생성된 분화구다. 대부분 사유지이며, 현재는 논과 과수원이 들어서 있다. 하논 분화구는 동아시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고생물과 고기후를 간직한 지형이다.”

<참고자료>
1. 네이버 지식백과, 서귀포 하논분화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참고.
2. 네이버 지식백과, 알려지지 않은 제주의 모습을 찾아서, 서홍8경, 비짓제주.
3. 하논분화구 방문자센터 자료, 서귀포시, 한국관관공사제주지사, 2019.

■ 신현숙(글ㆍ그림) | 창의문화캠퍼스 제1대학 | 현장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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